그동안 많은 선배, 동료, 주니어와 함께 일하면서, 그리고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면서 '아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엉망진창 이메일을 수없이 받아봤다. 아주 가끔 이메일을 정갈하게 정리해 보내는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이들은 일 처리도 아주 깔끔하고 명확하다.
보내오는 이메일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트레이닝이 잘되어 있는지, 업무에 대한 오너십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와 책임의 영역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래서 주니어가 회사에 새로 들어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이메일 사용 교육'은 빠짐없이 하고 있다.
잘못된 이메일의 예
이메일 쓰기를 제대로 배우지 않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메일을 정말 대충 쓴다. '냉무(내용없음)', '제곧내(제목이 곧 내용)'라고 보내오는 사람도 있고, 이메일에 온갖 이모티콘을 적어 보내오는 경우도 있다.
위와 같은 케이스는 협력사 간의 관계가 좋거나, '메시지만 전달하면 되지'의 의도로 메일을 사용하는 경우로 본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업무에 혼선을 주는 내용은 아니니 그러려니 넘어갈 수 있다.
업무에 혼선을 주는 경우는 '무지성 답장'이다. 메일을 수신하는 당사자가 아닌 참조자가 회신하기를 눌러 엉뚱한 질문이나 답변을 하는 경우가 그렇다. 수신, 참조자를 찾아 넣는 게 귀찮으니 그냥 회신, 전체회신 버튼으로 보내는 것인데 이런 경우 메일 스레드(thread)에 묻혀 나중에 내용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다양한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에이전시 담당자나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PM의 경우 이메일만으로도 업무의 진행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충 회신해서 할 말만 하는 경우에는 분명 누락이 발생한다.
이메일? 요즘 좋은 툴(tool) 많은데요?
"요즘 좋은 업무용 툴(tool) 많은데 이메일을 써야 하나요?"라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방법도 과거에 비해 참 다양해졌다. 전화와 이메일, 팩스를 쓰던 시대가 지나 이미 보편화된 모바일 메신저나 슬랙이나 잔디같은 업무 전용 협업 툴을 쓰고 파일을 주고받을 때는 각종 클라우드 드라이브를 쓴다. 상호 업무를 시작할 때 어떤 툴을 사용할지 정하기만 하면 된다. 편리하다.
그럼에도 업무에서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이메일'을 꼽고 싶다. 효율적이고 편리한 업무용 툴이 쏟아짐에도 왜 세상에 등장한지 50년이나 된 이메일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을까? 왜 이메일을 써야만 할까?
나를 보호하는 중요한 증빙자료
이런 경우가 있었다. 클라이언트가 전화로 팀원에게 업무를 요청했는데, 일이 꼬여버렸다. 그래서 책임소재를 놓고 갈등이 빚어졌다. 발뺌하는 담당자, 업무 지시를 올바로 알아듣지 못했다는 결론으로 '을'의 위치인 우리의 책임이 되어버려 모든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했다.
그런 일을 경험한 후로 담당자가 전화로 업무요청을 할 때는 반드시 관련 내용을 이메일로 정리해서 전달해달라고 요청한다. 친절하게 업무 누락이 없도록 참조처까지 첨부해달라고 하면 금상첨화다. 상대방이 직위가 높아 요청을 하는 것이 어렵다면 '요청하신 내용을 정리해서 이메일로 다시 전달드리겠습니다. 혹시 저희가 잘못 이해한 것이라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우리가 이메일을 보내면 된다.
전화를 통해 업무를 협의하는 경우는 피드백이 즉시적이라 일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지만, 흔적이 남지 않는 수단이기 때문에 이메일을 꼭 함께 쓴다. 중요한 증빙자료로 쓰일 수 있는 만큼 이메일은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컴팩트하게, 감정 표현을 자제해 쓰도록 하자.
차곡하게 쌓인 메일은 내 업무의 역사
오랜 시간 다양한 업무 경험을 쌓으면 몸으로 체득하는 것도 많지만 기억력은 한계가 있기에 업무 이메일은 정리해 보관하는 것이 좋다. 메일 용량이 모자라는 경우에는 회사에 요청해서 용량을 늘린다거나 POP 등을 이용해 개인 메일 주소에 쌓이도록 둔다.
내 경우는 Gmail을 쓰면서 회사의 모든 메일을 끌어온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네이버웍스는 POP, SMTP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Gmail에서 회사 주소로 보내기 받기가 가능하다. Gmail의 강력한 검색 기능은 덤이다. 몇 개 회사를 거치면서 회사 이름과 닮은 몇 개의 Gmail 계정도 가지고 있다. 용량이 부족한 네이버웍스에서 메일을 삭제해도 Gmail은 여전히 모든 메일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필요한 경우 과거 이메일에서 협력사의 연락처를 찾거나, 유사한 업무에 대한 히스토리를 찾아 지금의 업무에 도움을 받거나 그대로 적용하는 사례가 있다. 이 또한 대체 불가능한 이메일의 강점이다.
요즘 경쟁적으로 출시하는 업무용 툴들은 분명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는데 강점이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어디까지나 '현재' 시점에서는 최적의 툴일지는 모르나 내 커리어의 히스토리로 보면 퇴사 후 사용할 수 없는 그 업무용 툴은 나에게 남는 것이 없다. 이것만으로도 이메일을 써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Part.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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